• 보들레르 없는 마네를, 부르통 없는 초현실주의를, 그린버그 없는 잭슨 폴락을,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 없는 누벨 버그 영화를, 영상기술에 문외한인 백남준을, 과학과 정보에 무관심한 미디어 작가를, 보들리야르를 읽지 않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가들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진짜. 변듣보는 대단하다. 누구든 자기 말에 반론을 내놓으려면 자기가 만든 그 끈적한 프레임을 거쳐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아차. 백남준은 영상 기술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가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백남준의 작업 자체가 영상 기술에 대한 사유 – 그 방향은 기술을 어떻게 더 잘 구사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니다 – 없이는 불가능했겠지만 말이다.

  • 처마 끝에, 일가족과 함께, 신고를 한 그 친척이 목을 매달고 있었다고.

    어헉!!!

    (tags: 괴담)
  • “자연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적 도덕성 문제가 자주 거론되곤 한다. 중국에서 과학적 도덕성이라는 개념은 학자사회에서의 표절을 거론할때만 사용되곤 한다. 이건 정말 좁은 관점이다. 과학적 도덕성이라는 문제는, 만약 과학자들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인류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넓은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는 가능성이 있는 혼란을 예고하고 경고하는 일도 포함되는 것이다.”

    감각과 논리의 조화, 그리고 윤리적 완벽함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사악한 것들을 감각적으로 참을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전복과 전위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방법이 그들을 매우 섬세하게 만들고, 그것을 찾으려는 용기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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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화기를 끼우면(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디지털 신호를 소리로 바꾸고 반대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서 통신을 하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 진짜 촌철살인. 처음 볼 때는 진짜 작정하고 모에 코드로 가는구나 싶었는데, 간간히 보여주던 개그가 여기서 불을 뿜는다. 네이버의 꽃
  •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선 자그마한 비공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6·4 민주화 운동 연구’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 교수와 사회과학원 연구원, 문인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오는 4일 천안문(톈안먼) 민주화시위 20주년을 앞두고 중국 당국이 일체의 기념활동을 금지한 상황에서 열린 이들의 ‘은밀한 토론’은 한 참석자의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토론회는 참석자들의 ‘고해성사’로 시작했다. 쳰리췬 베이징대 교수는 ‘미완성의 역사 임무’라는 주제발표에서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희생을 막지 못한 죄책감과, 학자로서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지 못한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추이웨이핑 베이징영화학원 교수는 천안문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침묵과 은폐가 중국의 도덕적 기준을 훼손했다고 자책했다.

  • 기생말벌의 기생능력
  • 한국처럼 부르주아가 시민사회를 가져본 적이 없고, 중간계급이 시민사회의 상황을 접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은 정치를 발생시키는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은 이 구조를 벗어난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를 고민해야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등이 바로 촛불이었지 않을까?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주장을 차용한다면, 국가는 ‘상황상태’(l’état de la situation)의 사회역사적 양상이다. 상황이 얼어붙은 것이 상황상태이다.” 재밌는 개념이다. 알랭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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